보도기사

[2017.07 월간샘터] 이달에 만난 사람_고도원

국슬기

2017-06-14
조회수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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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에 건네는 17년의 위로
이달에 만난 사람 | 고도원



매일 아침 고도원은 외롭고 지친 이들을 위해 편지를 쓴다. 17년째 계속돼온 편지 쓰기는 한 지성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한 통의 편지가 주는 울림의 깊이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올해로 17년째 줄기차게 편지를 보내오는 남자가 있다. 그가 보내온 편지는 어떤 때는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연애편지였다가 어떤 날은 손을 대면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지성으로 마음 안에 긴 여운을 던져놓는다. 또 어느 때는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선뜻함에 몸을 움츠리게 했다가 어느 순간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몸과 마음을 나른하게 풀어놓아 주기도 한다.

놀라운 건 17년간 한 편도 중복되지 않았던 편지글만이 아니다. 매일 아침 그의 편지를 받고 있는 온라인 수취인의 수는 무려 363만 명. 이는 그의 주소지가 있는 충청북도 인구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숫자다. 2001년 8월 1일, 250여 명의 지인들에게 중국 작가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의 한 구절을 소개하는 글로 조촐하게 시작됐던 아침편지에 그사이 대체 어떤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뜻밖에도 편지의 발신자인 고도원(65) 작가는 갈수록 더 헛헛해 질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결핍을 이유로 들었다.

"짧은 편지 한 통으로도 위로가 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런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지요. 분명한 건 그럴 때일수록 누군가의 작은 위로가 큰 힘이 된다는 겁니다. 삶이 어려울 때 짧은 편지 한 통에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는 인사를 받을 때면 저도 큰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충북 충주시 노은면 자주봉산 중턱에 자리한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만난 그의 직함은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이다. 문화재단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아침편지의 운영과 홍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1980년 폐간된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와 일간지 《중앙 일보》 기자, 김대중정부 대통령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냈던 그의 이력과도 어딘지 모르게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아침편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수취인 수가 급증할수록 혼자 처리 하기 힘든 일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갔다. 하지만 재단의 출발점인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직접 챙기는 건 지금도 전혀 변함없는 일과라며 그는 선뜻 일행을 작고 정갈한 자신의 서재 안으로 안내했다.



예상대로 서재 한쪽에는 평소 그의 독서량을 짐작하게 하는 수백 권의 책 들이 쌓여 있었다. 제목을 살펴보니 중국 고전과 역사서부터 최근 출판된 IT 관련 서적까지 분야도 장르도 다양했다. 어릴 때부터 책의 성격에 따라 정독, 다독, 속독을 구분해 읽을 수 있는 독서광이었다는 그의 말이 실감이 났다. 또한 일일이 독서카드를 만들어 보관하는 습관 역시 웬만한 독서광이 아니면 갖지 못할 능력이다.

성인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그의 독서지도 강의는 꽤 인기가 높다. 매일 아침 수취인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문장들과 깊은 사색의 원천을 충분한 경험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독서는 세상을, 그리고 자신을 읽는 경건한 기도의 시간이다.

"당연하죠. 제 글의 원천은 독서예요. 그리고 시골 교회 목사이셨던 아버지가 설교 준비를 위해 책의 좋은 구절을 찾아 따로 메모하시는 걸 지켜보면서 어릴 적부터 독서카드를 만들어 활용하기 시작한 덕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도 제 컴퓨터에는 앞으로 10년 동안은 쓸 수 있는 독서카드가 비축돼 있습니다. 그렇게 저장돼 있는 좋은 글 중에서 그때그때 이슈에 맞는 내용을 골라내고 거기에 맞춰 제 경험과 철학이 담긴 짧은 해설을 곁들이는 게 제 편지 쓰기의 비결입니다."

한때 가장 공적인 글인 대통령연설문을 담당하던 그가 어쩌다 이렇듯 가장 사적인 아침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일까. 그는 "청와대 생활은 무척 보람 있던 시절"이라고 전제하며 "그래도 저는 어디까지나 고스트라이터(유령 작가)잖아요. 제 철학이나 생각을 내려 놓고 그분의 시선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5년쯤 그 일을 하다 보니 제 안에 있는 에너지가 모두 방전돼버리는 느낌이 들더군요. 또 거기서 일했던 몇 년 동안 나흘밖에 못 쉴 만큼 과로를 하다 보니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더라고요"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에게 찾아온 심각한 건강 악화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 해주었다. 몸이 무너지자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 놓치며 살아왔던 게 눈에 보였다. 글이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고요한 마음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란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지인들에게 보내는 서신 형태로 시작했던 '아침편지'는 자신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어 시작했던 아침편지가 자신에게 글쓰기와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아주는 걸 체험하면서 어느덧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하루하루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숙명이 됐다.

"책은 지금도 열심히 읽어요. 그런 저를 보고 남들은 이제 독서 자체가 편지 쓰기를 위한 숙제처럼 생각되지 않느냐고 묻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책을 '엔조이'합니다. 편지는 종교적으로 말하면 명상을 통해 걸러진 기도문인 셈이에요."

그는 지난 17년 동안 매주 일요일을 빼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낸 아침 편지를 '명상의 아웃풋'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한 에너지와 영감을 충전 할 수 있는 명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터득한 명상의 방식을 공유하고 시스템화해야겠다는 사명감은 지난 2010년 이곳 충주시 노은면 산기슭에 세운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을 통해 더욱 구체화됐다.

현재 명상치유센터에서는 청소년 멘토프로그램 '링컨학교', 기업 및 단체를 위한 힐링연수 프로그램 '휴잠' 등 다채로운 명상치유 과정을 운영 중이다.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매월 약 7천~8천 명이 이곳을 다녀간다고 한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그가 들려준 마지막 한 마디가 내내 귓전을 맴돌았다.

"한때는 저도 세속적인 야망이 강한 남자였어요. 그러다 시련을 맞닥뜨리면서 삶의 가치관이 이타적인 쪽으로 바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니 비로소 욕심을 버릴 수 있더라고요. 한번쯤 꺾이는 거,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느낌 한마디 1

  • 김응룡

    2017-07-13

    고도원원장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김응룡 목사 건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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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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