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동훈 사진: 윤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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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고도원님 일행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팻말과 꽃다발이 방문 일행을 맞아주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깜짝 행사에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연길의 도심은 이제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잘 정돈되어 있고, 도로 주변으로 건물도 빽빽합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조선족자치주이기 때문에 모든 간판에 한글이 함께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중국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한 지방을 방문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방문 첫날 열린 연길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 강연 시작 전부터 사진 촬영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줄을 섭니다. 멀리 산동성 청도에서 이 강연을 위해 오셨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루어진 방문이어서일까요. 중국 동포분들의 얼굴에도 웃음 가득, 고도원님의 얼굴에 더 큰 웃음이 지어집니다. 이렇게 고도원님의 책을 직접 가져와 사인을 부탁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이번 연길 시민 강연은 '유빈심리상담센터' 주최로 이루어졌습니다. 강연에 앞서 유빈회장님께서 인사말씀과 함께 고도원님, 아침편지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대륙에서 오래 기다려온 중국 동포분들의 열기가 전해져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혼신을 다한 열정으로 1시간30분의 시간을 꽉 채워 '꿈너머꿈'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청중들이 하나같이 강연에 깊이 몰입하여 들어주셨습니다. 사전에 준비했던 120석이 모자라 임시 의자를 동원하고 출입문 밖에까지 앉아야 할 정도로 큰 호응이 있었습니다. 강연 후에도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이 강연이 이루어지도록 수고해주신 유빈심리상담센터의 임원분들. 이 중 유빈회장님(뒷줄 오른쪽 끝)과 한건부회장님(뒷줄 왼쪽 끝)께서는 이번 방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일정을 함께 하시며 구석구석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셨습니다. 역사적인 중국 연변 첫 강연 현장을 배경으로 방문단 전체가 엄지를 내밀며 사진 한장 남겼습니다. 왼쪽부터 김종호부총경리(꽃마China), 최동훈실장, 윤나라수석실장, 고도원이사장, 유빈회장, 오유정부팀장, 한건부회장. 연변박물관 1층 로비. 이곳에는 중국 조선족 관련된 전시 내용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고, 특히 조선족 이주사, 조선족 민속유물 등을 한눈에 살펴보기에 좋습니다. 방문 둘째날에는 연길 남쪽에 위치한 용정시로 이동했습니다. 차를 타고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니 바로 산과 들이 펼쳐집니다. 3월이지만 만주벌판엔 아직 눈이 제법 쌓여 있습니다. 용정에는 윤동주시인의 생가가 있습니다. 윤동주시인이 나고 자란 곳이 바로 이곳 용정 명동마을입니다. 생가 입구에는 이곳에 주정부의 문화재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시인의 유고 시집명이 적힌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비석이 양 옆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윤동주 생가 바로 옆에 있는 옛 명동교회는 이처럼 전시관 역할을 합니다. 이 마을을 5대째 지키고 계신 송길련이장님께서 이 마을에 대한 역사, 이곳에서 배출한 인물 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전시된 인물사진의 아랫줄 왼쪽이 윤동주시인. 그 옆은 윤동주와 동갑내기 사촌지간이자 일생을 동고동락한 독립운동가 송몽규. 이 둘의 이야기는 최근 영화 '동주'로 개봉되어 다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나운규, 윤봉춘 등 만주 북간도의 작은 마을에서 배출한 인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민족시인 윤동주생가 보존회'에 서명하고 작게 나마 마음모아 힘을 보탰습니다. 이 건물이 바로 '윤동주 생가' 입니다. 1900년경에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당시 아주 전형적인 양식의 기와집입니다. 다 허물어진 것을 1994년에 연변대학 조선연구센터의 주선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생가의 내부모습. 구조나 면적, 가마솥의 배열 등으로 볼 때 윤동주시인의 집안이 가난에 허덕이는 정도는 아니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합니다. 이 마루턱에 앉아 나무와 바람을 바라보았을 시인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용정에서 다시 이동해 아직 눈이 많이 덮여 있는 산을 올랐습니다. 윤동주시인의 묘소를 찾아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인의 묘소 앞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묵념했습니다. 짧았지만 강렬했고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있는 시어들을 우리에게 전해 준 시인의 묘소 앞에서 숙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동주시인의 묘는 행방을 찾지 못하다 1985년이 되어서야 일본인 오무라교수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시인의 여동생인 윤혜원여사께서 다른 가족들의 묘는 찾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 비석으로 남겨두셨습니다. 용정에 오면 꼭 들려야 하는 이 곳, '일송정'입니다. 가곡 선구자의 첫 구절 '일송정 푸른 솔은…'의 바로 그 일송정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만주 벌판. 손으로 '해란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연변에서의 두번째 강연은 '연변대학 사범분원'에서 열렸습니다. 학교 정문에 환영 플랜카드가 크게 내걸렸습니다. 학교 로비의 전광판에도 고도원님의 특강이 큼지막하게 안내되었습니다. 연변대학 사범분원에서 강연이 있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주신 이향화교수님이십니다. 강연이 있기 전 학생들에게 아침편지에 대해, 고도원님에 대해 소개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핏줄을 물려 받은 청소년들. 그들에게 꿈이라는 북극성을 띄우기 위해 고도원님께서 혼신을 다한 특강이 이어집니다. 고도원님의 특강을 듣는 조선족 동포 학생들의 눈빛은 그야말로 초롱초롱 합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라 혹시 산만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습니다. 이향화교수님의 수첩이 꿈과 꿈너머꿈의 이야기로 채워져 갑니다. 강연 마치자마자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줄을 섭니다. 연변대학 사범분원에서 특강을 할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시고 준비해 주신 두 분, 김동택부원장님(우측)과 이향화교수님(좌측). 연길 아리랑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인<FM88 좋은 세상>에 초대되어 생방송 인터뷰도 함께 했습니다. 아침편지의 오랜 독자이기도 한 박성국 아나운서(남)와 서윤옥 아나운서(여)의 맛깔스런 진행 속에 1시간 가량 방송을 통해 중국 동포분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길의 동쪽에 있는 도문시에도 방문했습니다. 차로 1시간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이 강이 바로 '두만강'입니다. 두만강 건너의 땅은 북한입니다. 두만강 광장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 도문교입니다. 이렇게 간간히 무언가를 실은 화물차가 국경을 건너 오가고 있었습니다만, 두만강 이편과 저편의 모습이 한눈에 봐도 너무나 다른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