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 조송희 |
저무는 가을의 낭만이 깃든 도시 여수, 여수의 푸른 바다와 작고 아름다운 섬 장도가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도미니크 페로)가 지어놓은 '예울마루'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수가 낳은 대한민국의 대표 만화가 허영만展 '창작의 비밀'(2015.09.22.~11.29)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먼 세상을 떠돌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처럼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여수 앞 바다에서 열리는 개인전, 허영만展 '창작의 비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예술의전당 등에 이어 고도원님과 아침편지 가족들이 함께하는 걷기명상이 그 비밀스럽고도 특별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걷기명상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윤나라 실장. "이 곳은 창작하는 사람들이 문화예술의 에너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모태와 같은 곳입니다. 21C 새로운 창작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 허영만, 걷기명상을 하면서 그 분의 비밀을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이승필 예울마루 관장의 인사말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허영만이 40년 동안 그려낸 책들을 대형 원화, 캐릭터, 영화 등의 공간과 주제별로 정리했습니다. 히말라야 8천 미터 고봉을 단숨에 오를 수 없고 한걸음 한걸음이 늘 새로운 시작이듯이 그의 만화도 한 컷 한 컷이 만화 한 페이지의 시작이고 그 한권의 시작이 40년이었습니다. 허영만의 인터뷰영상을 보는 고도원님과 아침편지 가족들입니다. 허영만 작품들의 원화 중 선별한 작품을 대형 캔버스에 확대해서 보여주는 공간에서 걷기명상을 시작합니다. 펜으로 작게 그린 그림을 확대했는데도 밀도감이 떨어지지 않는 컷들이네요. 입체적이면서도 생생한 리얼리티가 느껴집니다. 첫 번째 징이 울렸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펜과 선의 느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부터 너무나 친근해서 미처 예술이라 생각지 못했던 만화, 그 만화의 힘이 새삼 크게 다가옵니다.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의 한 컷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고도원님입니다. 이 장면은 초원의 예언자가 칭기스칸의 등장을 예언하는 처음 부분으로 장신구와 복장을 화려하게 치장한 컷입니다. 12년째 '몽골에서 말타기'를 진행해 온 고도원님은 이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방대한 역사의 자료와 고증, 섬세한 감각과 표현, 상상력 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타짜에서 도박은 소재일 뿐 만군상의 심리와 그들의 관계를 드라마틱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타짜'는 스포츠조선에 연재하면서 히트 한 만화입니다. 영화 '타짜' 1,2는 각각 600만과 400만 관객을 동원했지요. 하지만 '타짜'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스토리노트와 메모가 전시 된 공간에서 메모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아침편지가족들입니다. "만화가는 연재매체에 따라 연재가 가능한 스토리를 충분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허영만은 말합니다. 허영만의 작품 스토리는 늘 이런 준비성에서 풀어집니다. 허영만은 직접 이야기를 쓰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들과도 작업을 합니다. 김세영, 노진수, 박하, 장대일, 이호준 등이 스토리작가입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글쟁이들입니다. '오! 한강'의 한 장면입니다. 1945년 해방 전후를 시작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이루어진 1987년 6월 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룬 대작 '오! 한강'은 1988년 '만화광장'에 연재할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만화를 전공하고 있지만 만화로 하는 전시회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만화의 가치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참 뿌듯합니다." 광양에서 온 참여자 이승인님이 만화 한 컷 한 컷을 눈에 담을 듯 들여다봅니다. 만화에는 어릴 적 추억과 꿈이 스며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그토록 야단을 맞으면서도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만화 속의 세상, 그 황홀한 세상이 이렇게 환하고 멋진 공간 속에 되살아났습니다. 이번 허영만展 '창작의 비밀' 걷기명상에는 중장년 남자들이 유난히 많이 참여했습니다. 허영만의 만화가 그만큼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중후한 신사분이 한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만화를 들여다봅니다. 추억에 잠긴 걸까요? 왠지 가슴이 찡해집니다. 다시 징이 울립니다. 눈을 감고 추억을 따라 떠돌다보니 마음 한 쪽이 몽글몽글 참 따뜻합니다. 다른 전시회보다 더 자세히, 더 오래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은 만화가 우리에게 주는 친숙함과 만화 전시회가 주는 새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 허영만'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입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허영만, 젊은 시절에는 오토바이를 즐겨 탔고 요트나 낚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며 에베레스트에 오를 정도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 무엇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중년 남자. 요즘 허영만의 꿈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은퇴 후에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싸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름 저기서 한 달... 그러다 지치면 집에 돌아오는 바람 같은 영감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허영만의 일과표입니다. 잠, 작업과 함께 영화, 미팅을 겸한 술술술~ 술이 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네요. 그렇지만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 술. 그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인간적인지 알 것 같습니다. 걷기명상을 마친 후 간단하게 준비 된 다과를 먹으며 휴식을 하는 시간입니다. 책꽂이에 가득 꽂힌 만화들 때문에 꼭 동네 만화방에 들어온 것 같네요. 환하게 웃는 이승인님의 세 가족(앞줄)입니다. 이번 걷기명상에도 온가족이 함께 참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쪽 테이블에는 함께 자리한 분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서 선물하는 청년이 인기 만점입니다. 5분도 안 걸리는 짧은 시간, 쓱쓱 그려내는 캐리커처에 인물의 특징이 기막히게 포착되어 있네요. 이 청년도 머지않은 미래에 만화가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윤나라 실장이 진행하는 예술치유 프로그램입니다. '자화상 그리기' 만화도 결국 우리의 모습을 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지, 몇 개의 펜으로 나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시간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고요히 명상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나와 대화 하는 시간입니다. 명상하는 표정들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지요. 이렇게 펜을 쥐고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빨갛고 노란 몽당크레파스로 흰 도화지를 메꾸던 초등학교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요. 자화상을 그리라니 참 어색하고도 난감하지만 최선을 다해봅니다. 각 조에서 뽑힌 사람이 한명씩 나와서 자신이 그린 자화상을 설명합니다. 솔직하면서도 엉뚱 발랄한 표현에 설명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웃음이 터집니다. 걷기명상의 마지막 순서, 고도원님의 특강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소풍이 필요합니다. 잠깐 멈추는 시간이지요. 하지만 아무 곳에나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 곳은 꽃밭이어야 합니다." "이곳은 창작 공간입니다. 창작은 내 안에 있는 내밀한 언어를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허영만 작가의 붓 끝에 비밀의 샘이 마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도원님의 열강입니다.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메모를 하는 참여자들입니다. 전시된 자화상들입니다. 만화가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듯이 우리는 모두 저마다 간직한 소중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꿈과 사랑과 소망을 간직한 내 삶의 주인공입니다. 다가오는 겨울, 당신의 삶에도 창작의 샘물도 다시 차오르기를, 그 샘의 문을 열수 있는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시기를 소망합니다. |